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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까지(일기)

15. 신선3차, 세 번째 난자채취 후 난임 우울에 대한 고찰(?)

by 밍이는 지금 2023. 6. 20.

 

 
시험관시술을 시작한 지 6개월째
세 번의 이식을 실패하고 
어느새 세 번째 난자채취를 했다.
이번 채취에서는 주사오류라는 큰 이벤트도 있었다.ㅠㅠ
 

 
AMH 수치 0.7
수치에 비해서는 한 차수에
난자가 잘 나오는 편이지만 
역시 난저는 난저인건지.
동결배아는 하나씩만 나와서
6개월 동안 채취와 이식을 쉼 없이 반복해 왔다.
 
이젠 나도 고차수라고 해야 할까? 
아직 고차수는 아닌가?
고차수 분들이 보기엔 아직 애기인가...ㅎㅎ
 
이게 뭐가 중요한가 싶다.
이식 후 한 줄을 확인할 때 실망감과 허탈함...

뭐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마찬가지일 텐데.

 

시험관을 하는 모든 분들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해서ㅋ

 


첫 번째에는 멋모르고 했고
두 번째때는 기대했다가 크게 실망했다.
 
세 번째 이식이 비임신으로 종결됐을 때는
딱히 눈물도 나지 않았다.
실망보다는 무서운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어라? 이거 진짜 위험한 것 아닌가.

 

세 번의 실패를 겪으며 내가 제일 크게 느낀 건
시험관이란 마치 내 노력여부와 상관없이
0점을 맞을 수도 있는 시험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노력하는 방법도 확실한 것이 없어서 
막막한 터널을 걷는 기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연달아 빵점을 맞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건 자신 있는 사람이었고
요령이 없는 탓에 처음에는 늘 결과가 좋지 못했지만
노력한 것보다 점수가 잘 안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빵점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실수투성이여도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할수록 조금씩 나아졌는데

 

그런데 이건, 세 번 다 빵점 맞았네.

 

 

아무리 열심히 과배란 주사를 맞고 몸 관리를 해도
그 끝은 비임신을 수도 있다.
의학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착상만큼은 신의 영역이고
착상이 되어도
1차, 2차, 3차 피검. 
7주 아기집을 볼 때까지
12주 난임 병원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 맘 졸이며 넘어야 할 단계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내 노력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세 번의 실패를 겪으며 몸소 체험한 이 사실이

문득문득 나를 너무 불안하게 했다.
큰 문제는 없다니까 운이 없었을 뿐인 걸.
다독였던 마음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끝없는 터널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 남은 집에서
사연 있는 사람 마냥 훌쩍대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갑자기 주룩 눈물이 흘렀다.
멀쩡히 티브이를 보다가 글을 쓰다가 밥을 먹다가
이상하게 갑자기.
 
너무 말하고 싶은데 말할 곳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말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최우선인 한없이 다정한 성격이고
얘기하면 언제든 들어주는 사람이지만
말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닌데
감정이 밀려올 때마다 매번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당연히.
이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 시험관이었다.
 
시험관 하면 다 되는 거 아니야?
야 난 시험관까지는 하고 싶지 않더라
예상외로 이런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얘기 들을 바엔 그냥 그래.
하고 짧게 말하는 게 나았다.
 
그들의 말이 솔직히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딱히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저 새삼 과거 나의 무지함을 돌아본다.
 
나도 시험관을 시작하기 전엔...
건강에는 자신 있었고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까 ㅋ
 
 

 

 
나는 사실 시험관을 시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누군가는 난임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허들이라는데
나는 산전검사 결과에서 AMH 0.7 수치를 받아 든 순간
충격도 잠시 바로 난임병원문을 두드렸다.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서였다.

우리는 조금 늦게 결혼했고
아이를 원하는데 난소저하가 보인다면?
하루빨리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게 합리적이지.
뭐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고 어쩌고...
이런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 성격이 좀 기복이 적고
무심하고 둔한 스타일이라서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남편은 내게 회복탄력성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내 기분도 요동치게 하는 것이 시험관...!!
호르몬 주사를 계속 맞아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최근 들어
내 기분인데 내 마음대로 안 되어서 펑펑 울고
다음날 이불킥 할 때가 잦아졌다.
(지금 이렇게 센티한 글을 써내리는 것도..
나중에 다시 보면 창피할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반착 검사를 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고 혈전에서만
이상반응이 나왔다.
주사를 추가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검사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디든 문제가 좀 있었으면 했다.
약이라도 써볼 수 있게.
원인을 알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
 

 
요즘 나는 매주 성당에 가려고 노력한다.
원래도 성당을 꾸준히 다니긴 했는데
시험관을 하면서는 더 의식해서 가고 
기도로 열심히 하는 듯ㅋㅋ
기도의 반은 원망일 때도 많지만 ㅋ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분명 있다는 걸
더욱 실감하는 요즘.
아득한 기분이 들 때면 예전부터 좋아했던 기도문을
읽어보고는 한다.
 

 

 

평온을 구하는 기도

라인홀드 니버

 

주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소서.

 

오늘 하루를 살게 하시고

순간순간을 누리게 하시며

고난을 평화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죄로 물든 세상을 제 방식이 아닌

그분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당신께서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것을 믿게 하셔서

이곳에 사는 동안 사리에 맞는 행복을

그리고 저곳에서 당신과 더불어

영원토록 온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차수 한 차수 또 하면서
결국에는 될 거라고 굳게 믿는 것.
힘들어도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즐기는 것.
생각해 보면 감사한 것도 많다.

우리가 시험관 시술을 시도할 수 있는 처지인 것
남편이 정말 다정한 사람이며
시험관에 적극적이라는 것도.

성실하고 착실한 남편 덕에
내가 잠시 일을 쉬고
시험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시험관 시술이라는 단계를 함께 겪으며
우리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세상에는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겸손함도 얻게 되었다.
 
나는 결국 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시험관을 준비하는 분들 모두.
시험관 카페에서도 그렇게 교수님들도 늘 하시는 말씀이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되긴 된다는 거니까!
시험관을 하는 모든 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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